4월 11일 일기

 폴란드에 온 지 이제 한달 반이 다되어간다. 여전히 숙소는 낯설고 창 밖은 환하기만 하다. 나를 받쳐주던 시스템의 부재로 오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코로나로 인해 EU는 5월 3일까지 외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폴란드는 총리특별성명 아래 여전히 외출금지가 시행되고 있다. 회사와 숙소만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에서 마트에 가는게 유일한 외출이다.

 마트에서 하는 일
먼저 과일을 고른다. 폴란드 블루베리는 한국보다 알이 크고 맛이 좋다. 더 싸기도 하고. 배는 퍼석퍼석해서 맛이 없다. 두번째로 맥주를 고른다. 종류가 워낙 많아 주로 병뚜껑과 라벨 그림을 보고 눈에 들어오는 걸 산다. 저번에 산 커피코코넛맥주가 맛있었다. 그다음엔 유제품. 우리나라보다 우유와 요거트, 치즈 종류가 다양하다. 오늘은 트러플이 들어간 까망베르 치즈를 샀다. 저번에 저녁 초대받았을 때 안주삼아 먹었는데 치즈 가운데 들어간 트러플 향이 정말 좋았다. 한국 가서도 가끔 먹고싶은 맛이다.

 새로운 구독을 신청했다. 글쓰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츠바이크가 쓴 슈바이쳐 이야기를 읽었다. 초등학교 때 위인전으로 읽은 후 완전히 까먹고 있던 인물이었는데 지금 읽어보니 더욱 대단해보인다. 오랜만에 사람에게 '고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귀하게 생을 살아간 삶을 읽다보면 내 삶을 반성하게 된다.

3월 23일 일기

 가장 안좋은 시기에 출장을 와버렸다. 국경은 폐쇄됐고 어제부로 국내로 가는 루트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독일로 넘어가 프랑크푸르트에서 가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곳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육로 이동 중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외출을 할 때는 사람들의 얼굴을 잘 보지 않게됐다. 아직 나한테 인종차별적인 행위를 드러낸 사람은 없었지만 혹여나라도 느끼기 싫어서 그렇다. 원두를 사러가면, 케이크와 사러가면 혹시 모를 두려움에 두근두근하면서 첫 마디를 내뱉는데 다들 웃으면서 대해준다. 고마운 사람들.
 호텔에서 지낸지 꼬박 3주가 지났다. 소지품들이 어느 정도 책상과 선반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내 방 같이 느껴지진 않는다. 특히 퇴근하고 방에 들어와 정돈된 이불을 볼 때. 왠지 1년은 빨지 않았을 것 같은 회색 베드스프레드가 침대 발치에 가지런히 놓인걸 보면 역시 내 방이 아니구나 싶다. 이불은 자고로 적당히 어지럽혀져야 있어하거늘..
 얼른 돌아가고 싶다.

11월 17일 일기



 술탄오브더디스코 GV 및 공연에 당첨되서 다녀왔다. 요즘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되나 고민이 됐는데 술탄도 어떤 음악을 해야하는지 고민했던 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더 우리답게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얼른 다큐 보고 싶다.


11월 7일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곁에 있는건 정말 행운이다.
어제 새로운 노래를 듣고 싶어서 유튜브 뮤직 재생목록을 뒤지다 결국 못찼았다.  다들 비슷비슷한 멜로디와 가사여서 딱히 맘에드는게 없었다. 그러다 저녁에 집에서 술탄 오브더 디스코 얘기하다가 김간지랑 전대정의 드럼소리를 비교하며 노래를 들려주는 남편이 있어서 좋았다.
 회사에는 노래를 찾는 사람이 정말 없다. 듣는다고 해도 '일요일 아침 청소할때 듣기 좋은 노래' 같은 만들어진 재생목록이나 인기차트 찾는 사람들만 봤었는데.  너무 다른 사람들 속에 있다가 제일 가까운 사람이랑 좋아하는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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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를 알 수 없는 마른 바닥으로 혼자 떨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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